EXPEDITION

하늘로 간 '산친구'

게시일 202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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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집을 나서 등산화 끈을 묶고 도봉산으로 향했습니다.


항상 혼자 가는 길이지만 오늘은 애인이자 아이들 엄마이자 집사람인 그녀와 함께 하는 길입니다. 오늘의 산행 목적지는 8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산 친구가 있는 곳입니다. 선인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그를 묻었습니다. 묻었다기 보다는 장례를 치른 후 유족에게 양해를 구해 유골 일부를 덜어서 선인봉이 잘보이는 산기슭 나무아래에 뿌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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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장부터 산길을 알려주고 삼신암터에 들러서 옛이야기 들려주고 주변 구경을 시켜주고 능선길에 올라섭니다.


멀리 경치가 조망되는 너럭바위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쉬던 제 애인이 뒤 편 바위 앞에서 절을 하는 저를 의아하게 바라봅니다. 당시 그 친구를 여기에 묻고 집에 와서 적었던 글입니다. 애인에게는 이야기로 들려준 내용입니다.


항상 그렇듯 산 친구를 보내고 돌아와 정신적 긴장이 풀어질 때면 마치 멀고 긴 여행에서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예전 촐라체에서 하늘로 간 (김)형일을 보낼 때 그랬고,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민)준영을 보낼 때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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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긴장의 상태를 '텐션(tension)이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클라이머들이 등반 중 추락할 때나, 추락하기 전에 확보보는 동료에게 외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줄(자일)을 느슨하게 하지 말고, 팽팽하게 당기라는 의미이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슬프고 허망하고 황당한 정도가 큰 것은 불현듯 찾아오는 불확실성에 있는 것이고, 생물학적 나이가 젊거나 어리기 때문에 강도가 센 것 아닐까요.


나이가 많아 찾아드는 노환이거나, 나이가 깊어짐에 따른 자연사(自然死)일 경우에는 '호상(好喪)' 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합니다. 모든 개별적인 죽음이 다 슬프고 사연이 있을진데 어찌 좋다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요.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말이라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공감하고 싶지 않은 단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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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닥쳐 온 산친구의 장례식장 첫 날...


남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는, 아니 믿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집사람이 울며 통곡하더군요. 누구 아저씨도 왔고, 누구 형도 왔는데, 왜 우리 그 이만 없느냐며 ...


​발인제가 끝나고 운구를 할 때도, 영구가 화로에 들어갈 때도 그 녀의 통곡은 깊었습니다. 모든 유족이 그렇듯 고인의 유골을 수습할 때가 가장 슬픔이 깊어집니다. 거기서 그 녀가 또 한 번 오열하며 통곡하며 말합니다. 다 들 미워할 거라고, 전부 미워할 거라며 우리들 산사람들을 보며 울며 말합니다.


그의 유골함을 받아 들고 걸어갈 때는


"이게 뭐냐, 겨우 이것 뿐이냐, 다 용서할 수 없어, 다 미워할거야..." 라고 깊게 오열했습니다. 산 다니는 죄, 등반을 하는 죄 실로 큽니다. 그의 집사람의 외침에 우리는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인과 함께 산을 다녔던 일행 모두 산에 올라 고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상을 차리고 제례를 올리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녀도 많이 안정을 찾은 모습이더군요. 많은 산사람들에게 그녀가 마지막 인사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눈물을 조용히 흘리더군요. 그 눈물을 보며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 속에서 스쳐가는 많은 영상들을 보았습니다. 많은 산친구들을 보내며 죽음이라는 것, 이별이라는 것에 이제 웬만큼은 친숙해졌고 무디어졌다 생각했는데 개별적인 죽음 앞에서는 항상 개별적 슬픔이 앞서, 슬프고 눈물 짓게 합니다.


​다시 도봉산장으로 내려와 커피를 마십니다. 날이 따뜻해 마당에서 마셔도 너무 좋습니다. 산장의 어머니는 항상 그 모습인 듯 하네요.


​친구를 만나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문을 연 천만불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또 다른 산친구와 유쾌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헤어져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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